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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을 일치(一致)시키는 원동력 [7]

미리내꿈 2010. 7. 3. 19:32

2010년 7월 3일 (토) 사랑의 교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신앙과 삶을 일치(一致)시키는 원동력 [7]


누가복음 22:14-20    Luke 22:14-20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4 When the hour came, Jesus and his apostles

reclined at the table.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5 And he

said to them, 'I have eagerly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

고    16 For I tell you, I will not eat it again until it finds fulfillment in the kingdom of God.'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7 After taking

the cup, he gave thanks and said, 'Take this and divide it among you.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8 For I tell you I will not drink again of the fruit of the vine until the

kingdom of God comes.'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

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19 And he took bread, gave thanks and broke it,

and gave it to them, saying, 'This is my body given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

하여 붓는 것이라    20 In the same way, after the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which is poured out for you.


말씀묵상


우리는 예배와 일상이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현장입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삶의 수준

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란 현실세계를 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감당하기 힘든 파도처럼 밀려오고 통제하기 힘들고 불공평

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세계가 우리의 삶을 힘겹게 하고 벅차게 한다고 할지라

도 구원의 진리와 삶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과 삶이 분리되어있는 불분명한 삶의 태도와 이

중적인 태도를 고치고, “하나님, 신앙과 삶이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소원해야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영성이란, 속세를 떠난 수도원적인 생활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 기초

하여 일상생활을 지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세상이 죄악으로 치달으면 치달을 수록 이 세상

의 현실세계는 더욱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속한 삶의 현장에서 실패하거나 물러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기

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과 이 세상의 변혁을 위한 중요한 학습 자료로 성만

찬을 사용했습니다. 성찬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 부활의 사건에 초점을 집

중케 하는 렌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찬을 통해 복음의 은혜에 대해서 실체감 있게 회상하

는 동시에 귀한 복음의 은혜에 대한 기억들을 날마다 회복케 하는 일종의 도전장의 역할을 하게됩니

다. 또한 성만찬은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정체성을 제공합니다. 공동체에 속한 믿음의 식구들이 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지를 강력하게 진술하게 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구약은 신약을 상징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기 전에 집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의 천사가 유월(pass over), 즉 넘어갔던 사건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그 집안에 애

굽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더 못되고 문제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났던 유월절이 신약으로 넘어와 오늘 이 순간 그 상황이 하나의 그림자가 되

었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의 유월절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즉, 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세례로 바뀐 것처럼 구약의 유월절이 신약의 성만찬으로 바뀌게 된 것입

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의 은혜를 기억할 때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새언약의 자

손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19절 말씀입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면 가라사

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 여기서 기념하라는 말은 본

래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특별한 대상이나 물건을 가지고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흔히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생활현장 가운데서 잊지 말고 기억하라

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 중 하나가 똑같은 것을 반복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점 입니다.

그래서 둔감해 지고 잊어버리는 우리의 약점을 주님이 아시고 날마다 우리가 반복할 수 있는 것, 날

마다 확인되고 날마다 자기 몸의 곁에 두고 보고 있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기억이라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그리스

도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내용을 가지고 기억정도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미암아 신앙과 삶의 일치에 관해서 영

적인 동력을 원동력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행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기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평생 언약의 자손으로서 우리자신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까?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첫째는 날마다 짓는 습관적인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죄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교만해서, 내 힘과

내 실력으로 살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는 것입니다. 내 의지와 내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안 됩니다. 주님 앞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그 순간 하나님 내 반복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내적인 작업이라면 우리의

외적인 작업은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찬 앞에서의 순종은 이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순종을

배우는데 이 순종은 우리 몸에 고삐를 물리는 작업입니다. 소를 제대로 몰기 위해서는 송아지 때 코

를 뚫어야 주인의 의도대로 갈 수 있듯이 성찬식을 통해 우리의 몸에 고삐를 물림으로써 거룩한 습

관들을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 입니다. 이 거룩한 습관을

몸에 새겨놓으면 주를 섬기고 사랑하고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주님의 살 깊은 주님의 사랑을 여러분 몸에 복종시켜서 기억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분열된 우리의

마음을 멈추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 습관적인 죄악들을 정리하고 성찬을 기억

하며 몸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님의 주일설교(2003.11.16)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