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목표를 이루려면
2010년 8월 15일 (주일) 사랑의 교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성숙의 목표를 이루려면
야고보서 1:1~5 James 1:1~5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 James, a
servant of God and of the Lord Jesus Christ, To the twelve tribes scattered among the nations:
Greetings.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3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develops perseverance.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4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 If any of you lacks wisdom, he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him.
말씀묵상
성숙의 목표를 이루는 길”을 다르게 표현하면 “시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감당할 것인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주시는 이유를 ‘너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
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말은 죄가 없는 전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성숙한 성장의 목표를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
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이 ‘완벽하게 무엇을 다 하
셨다’ 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갖고 계신 생의 목표를 다 이루고 가셨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숙의 목표에 대한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습니다만 성숙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그냥 주저앉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시련은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만날 때 여러 가지 반응
을 일으킵니다. 이 반응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반응
을 위해서 우리가 두 가지 적용을 하기 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시험을 물리쳤을 때, 시험이 없을 때
, 시험이 지나갔을 때 기뻐하라가 아니라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탈피하려고 하는 것이 자연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탈피하고 도망가버리면 그 시련 앞에서
하나님께서 어려움의 깊숙한 곳에 묻어두신 성숙이라는 보석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고난 자체가 행
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고난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다
는 것입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것은 시련에 대한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반응입니다.
오늘 야고보가 가르치는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영혼의 기쁨인 줄을 믿으셔야 합니다. 아
픔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어서 주님을 향한 갈망을 더 간절하게 해 줍니다. 정말 고통당해 보십시
오. 단순해집니다. 단순하다는 말은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고결함과 집중력이 쇠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더 훈련되어
지고 더 정결케 되고 우리의 삶에 가지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모난 부분, 잘못된 것들을 가지치기
하는 기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관점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은 우리가 상황을 볼 때에 육신의 관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셔야 합니다. 어려
운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시련 가운데서도 한 번 기뻐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러면 여러분도 깨닫지 못하던 아니 우리가 상상도 못하던 새로운 영적인 도약을 경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시련의 원인과 이유를 발견하면 성숙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십
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련의 원인과 이유가 인내라
는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의 능력, 실력, 사회적 재능을 점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은 우리의 믿
음의 성숙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시련은 우리의 인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순례길
앞에서 우리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성숙이 있느냐, 성숙하
지 못하느냐 이것이 질문입니다. 성숙의 척도가 무엇입니까? 시련을 통한 인내이고 그 시련을 통해
우리에게 온전함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성숙이라는 것은 인내라는 여정의 끝에서 우
리를 기다리는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성숙이 있을 때 어떤 압력 앞에서도 평안함을 감당
할 수 있는 내적 안정성, 성품의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인내가 있을 때 삶의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인내는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온전함으로 구비시켜 주시
는 것입니다.
인내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세가지를 사용하십니다. 망치를 사용하시고 쇠 끌을 사용하시고 용광로
를 사용하십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인생의 징벌처럼 보이는 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가지치기
가 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정결케 할 수 있도록 망치를 통하여 우리의 부정한 부분을 부수뜨려 주
시고, 쇠줄과 쇠끌을 통하여 딱딱하여 다듬어지지 않는 부분들을 다듬어 주시고, 용광로를 통하여
우리의 불순물들을 태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망치를 가지고 때리십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힘들지만 대장장이의 손에서 제대로 빚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용광로는 더
심합니다. 있는 것 다 불태워버리고 재가 되게 만들고 온 몸이 녹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광로
에 불을 때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은혜가 있을 때 우리는 인내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 마
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부서뜨리고 나를 다듬으시
고 나에게 불과 같은 시련을 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 깨닫겠습니다." 여러분 힘든 가운데서 성숙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못과 내어침을 받더라도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의탁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적 성숙의 도약을 맛보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님의 주일설교(2004.12.12)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