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꿈 2010. 8. 22. 13:45

2010년 8월 22일 (주일) 사랑의 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님


공중예배


시편 95:1~11    Psalm 95:1~11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1 Come, let us

sing for joy to the LORD; let us shout aloud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2 Let us come before

him with thanksgiving and extol him with music and song.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3 For the LORD is the

great God, the great King above all gods.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4 In his hand are the

depths of the earth, and the mountain peaks belong to him.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5 The sea is his, for he made

it, and his hands formed the dry land.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6 Come, let us bow down

in worship,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7 for he is our God and we are the people of his pasture, the

flock under his care. Today, if you hear his voice,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

어다    8 do not harden your hearts as you did at Meribah, as you did that day at Massah in the

desert,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9 where your

fathers tested and tried me, though they had seen what I did.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

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0 For forty years I was angry with that generation; I said, 'They are a

people whose hearts go astray, and they have not known my ways.'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1 So I

declared on oath in my anger, 'They shall never enter my rest.'


말씀묵상


교회가 함께 모여 드리는 공중예배에 대해 나누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라는 단어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1-2절,6절) .
그리고 조금 앞에 있는 시편89장 1절과 비교해 보세요.

그 내용이 상당히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시편 89편이 개인 예배의 기도인데 비해 95편은 공중예배의

찬양입니다. 공중예배는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전교회가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주일 낮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예배나 가정예배와는 비교

가 되지 아니하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중예배가 왜 다른 예배와 달리 특별히 중요한가 ?
첫째로, 공중예배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주는 첫 이미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이냐고 세상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예배 드리는 곳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교

회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교인들이 주일날마다 드나드는 어떤 장소를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

물론 교회의 의미는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닙니다. 더 깊은 차원이 있습니다마는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 잘 모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만약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것을 등한히 해버린다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한낱 형체 없는 이미지로 남아 버립니다. 그들에게는 형체가 없는 것은 실체로서 통하지 않는 것입

니다.

두 번째로, 공중예배에는 하나님이 가장 강력하게,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배보다도 공중예배에 하나님이 특별히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

습니까? 적어도 두 군데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 오신 장면에

서와, 오순절 성령이 예루살렘 교회 위에 임하신 사건에서 입니다.
둘 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날이 주일이었다는 점과, 성도 (제자)들이 다 함

께 모여 있는 자리였다는 점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하나님께서 이 공중예배를 가장 기뻐하신

다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공중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기회가 된다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지 나의 머리는 아닙니다.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예배는 교회적입니다. 성경

은 천군천사의 찬양을 받으시고 14만4천의 노래를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의 찬

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분으로는 거의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전 교회가 모인

자리를 더 없이 기쁘게 여기시고 축복하시며,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는 것

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공중예배는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선포한다는 말은 설교한다는 말입니다. 설교는 선포입니다. 듣든지 말든지, 동의하든지 말든

지 하나님이 설교자라는 전달자를 통해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어떤 개인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 들여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듣는 우리 각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실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심령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네 번째로, 공중예배는 교회의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공중예배에서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이 흘러나옵니다. 공중예배가 중단되면 교회는 병이 들

든지 죽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심장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생명체가 심장의 박동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듯이, 주일학교에서부터 다락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공중예배라는

심장에서부터 계속해서 새 피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공중예배의 가치를 깨달을 때 우리가 실제적으로 삶 가운데 적용해 나가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원리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예배를 위한 성실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1. 생활의 최우선권에 두십시오.
다른 일 때문에 일찌감치 예배 드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제일 먼저 예배 드린

다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2. 기대를 가지고 나오십시오.
기대감은 은혜받을 그릇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성령의 능력있는 역사를 기대하는 정도에 따라 하나

님은 채워주십니다.(시81:10)

3. 따로 구별하십시오.
우리에게 한가지 위기의 조짐이 있습니다. 주일을 구별하는 긍지가 희박해지고 한나절 즐거움을 위

해서 라면 거리낌 없이 양보해 버리는 좋지 못한 경향이 교회 안에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일은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의 날이요, 전 교회가 함께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날임을 기억해

야 합니다 .
4. 정성을 다 하십시오.
시간 하나라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매번 마다 예배참석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다면 사전에

방지하는 대책을 세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실을 바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그날은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럴수록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힘써 모아야 합니다(히 10:24,25,37) .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