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의 초청
2010년 8월 23일 (월) 사랑의 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님
예배에의 초청
시편 95:1~7 Psalm 95:1~7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1 Come, let us sing for joy to the LORD; let us shout aloud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2 Let us come before him with thanksgiving and extol him with music and song.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3 For the LORD is the great God, the great King above all gods.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4 In his hand are the depths of the earth, and the mountain peaks belong to him.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5 The sea is his, for he made it, and his hands formed the dry land.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6 Come, let us bow down in worship,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7 for he is our God and we are the people of his pasture, the flock under his care. Today, if you hear his voice,
말씀묵상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행위 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배가 예배에의 초청 경시되거나 혹은 형식화되는 풍조가 교계 안에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앞으로 교회 내에 예배에 대한 회개운동, 대각성운동이 힘차게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한국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아무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95편은 저자가 분명하지 않지만 히브리서를 보면 다윗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예배로 초청하는 시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예배가 시작될 때 이 시가 낭송되었다고 합니다.
“오라”를 하는 초청 속에 당겨진 두 가지 진리
이 성시를 펴자마자 우리는 “오라”고 부르는 초청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초청할 때는 하나님이 직접 오라고 부르시기도 하고(사 1:18) 바로 여기에서와 같이(1절,6절) 성도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예배로 초청하신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3:11에도 하나님을 깨달은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세상 아무도 하나님께 예배하러 갈만한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는 깊고도 큰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두 가지 전제조건 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1절 중간쯤, "우리 구원의 반석"이라는 표현 안에 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구원”이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이 찾아 주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씌어졌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 주시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가 먼저 이 자리에 나와주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주시고 자신을 나타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감격스러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둘째로 “오라”고 하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 주셨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나 하나님 앞에 와서 경배드릴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독특한 사람만이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습니다. 7절에 그는 "우리 하나님" 이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에 양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 초청의 영광을 안다면 우리는 이 예배의 특권을 그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찾아주시고 불러 주시는 하나님,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는데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된다 한들 생명을 빼앗기게 된다 한들 이 은혜를 외면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시간은 물거품 같은 하루의 쾌락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광의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행여나 이 예배를 습관적으로나 마음 없이 드렸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한국교회 예배의 병적원인:자기 중심적 예배
한국교회의 예배가 어떤 면에서 병들었다고 하는지 아십니까? 오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는 점에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중심의 예배로 변질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 받고자 나오는 예배요, 못 이룬 욕망과 소원으로 몸부림치는 의식의 하나로 타락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다든지 자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언제라도 등을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숙연히 받아들이고 깊이 음미해 두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예배는 그 자체 안에만 목적을 가진다」라는 말입니다. 예배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예배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예배를 드립니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 아는 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예배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온 우주의 광대함과 위대함이 그의 말씀으로 이뤄졌습니다. 예배하지 아니할 수 없어 예배하는 것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목적의 전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예배자로 돌아갈 때 자연히 나타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 즐거운 찬송이 있습니다. (1,2절)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그를 즐겁게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43:21/엡 1:3)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우러러 볼 때 그 이름 높이지 아니할 수 없는 찬송,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솟구쳐 흐르는 찬송이 성도들의 가슴에서 터져 나옵니다.
또 하나 감사가 있습니다(2절)
감사는 삶 자체를 하나님의 선물로 고백하는 경축행위 입니다. 구원의 반석이시고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주어졌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세 번째는 굽혀 경배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세요.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얼굴을 땅에 댄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의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권위 앞에 무릎 꿇어 복종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고 또 뿌리내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