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의 마지막 소원
누가복음 2:22~23 Luke 2:22~23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2 When the time of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had been completed, Joseph and Mary took him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is to be consecrated to the Lord'),
본문의 시몬과 안나, 이들은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새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샛별처럼 빛나는 놀라운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비록 세상에서는 명예롭지 못하고 칭찬 받는 이름이 아닐지라도 신자의 강조점은 영원한데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과 명예는 영원한 것과 직결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시몬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본문에는 시몬에 대한 간단한 전기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거주지는 예루살렘이며, 이름은 시몬이고, 나이는 연로한 편입니다. 그리고 인격과 생활은 의롭고 경건하며, 최대의 관심사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의 특징으로는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몬은 그리스도인의 표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시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은 큰 유익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첫째, 시몬의 최대의 관심사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인류의 구원자인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므로, 성령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위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자신은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장에 있는 바와 같이 반항하고 피하고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시몬은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절감하는데서 오는 하나의 바램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는 도무지 구원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발견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본문을 보면 시몬은 구원자가 필요치 않은 완벽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정직하다, 양심적이다」라고 하여 대인 관계를 의미하며, 「경건하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바로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몬의 인격은 사람 앞에 서나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을 만한 완전한 인격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구원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31절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족속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자라고 믿었습니다. 즉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몬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불신자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의 가슴은 항상 타야 합니다. "오 주여 저들이 눈을 감기 전에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이번 전도집회를 계기로 우리는 시몬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 시몬은 예수님을 팔에 안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고 외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원 그 자체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초라한 어린 아기를 안고 이 분이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요, 자신의 구원이라고 고백한 것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안됩니다. 마리아가 40일이 된 아기를 안고 성전에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기를 보았지만 시몬과 안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사를 지내주던 제사장들도 역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맏아들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는데 맏아들 대신에 레위지파를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구별하시고 맏아들은 데리고 와서 자기 생활수준에 따라서 예물을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 규례에 따라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비둘기 한 쌍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가신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아들이었을 때는 40일간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70일간 부정하다 하여 성전 출입이 금지됩니다. 어머니가 부정하므로 아이도 역시 부정하게 취급됩니다. 정해진 기간이 되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면 그 시간부터 깨끗하다는 선언을 받게 되는데 흠과 티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마치 부정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부정한 아이의 취급을 받으시고 성전에서 깨끗하다는 율법의 선언을 받는 의식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시몬의 눈을 열어주신 것처럼 육체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믿음의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그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감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시몬과 같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셋째, 시몬은 예수님을 발견하자 기쁨이 충만하여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사람은 원천적인 욕구불만이 해소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원천적인 욕구불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마음에 들어가면 방황하던 삶이 안정을 찾게 되고, 불평과 생에 대한 허무감이 사라집니다. 욕심도 뿌리가 뽑히고 마음에는 늘 평안과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처럼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다음에 오는 기쁨과 만족이 마음에서 터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님의 주일설교(1984.12.16)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