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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버지다

미리내꿈 2011. 7. 17. 10:06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4:15    1 Corinthians 4:15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

를 낳았음이라    15 Even though you have ten thousand guardians in Christ, you do not have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became your father through the gospel.   
 
 
  말씀묵상  
  
제가 중앙일보 일요판 중앙선데이의 삶과 믿음 이란 코너의 집필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에 쓴 글을 그대로 소개해 봅니다.


무서웠다. ‘나가! 이 녀석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컸다. 쫓겨났다. 오갈 데도 없었다.
겁먹은 어린 아들은 삽작문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옆집 대나무 밭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기괴했다.
우우우. 검은 먹구름이 휙 날아갈 때는 솔개가 덮치는 듯 공포에 떨었다.
버럭 화를 내신 아버지는 이내 코를 골았다.


아버지의 성질을 부채질할까 봐 숨죽여 있던 어머니는 그제야 동생들을 다그쳤다.
‘니 형 얼어 죽겠다. 빨리 가서 데려와라.’ 동생은 찌푸린 얼굴로 나와서 소매를 끈다.
‘아부지 주무신다. 빨리 들어가자 씨이’ 우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방으로 들어섰다.
소년의 아버지는 매사가 엄격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이 없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그 날의 마음의 기상 예보였다.


중년이 된 소년은 어느 날, 아버지 방에를 들어서다 놀란다.
머무시는 방의 책상 서랍에 숨겨있던 페트병에 담긴 술병 때문이다.
목사인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몰래 숨겨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중년의 소년은 돌아서서 운다.
‘아버지, 괜찮아요. 그냥 편하게 드세요. 술 먹는다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에요.
’ 목사가 된 아들은 그렇게 소리친다.
한없이 약해져 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위엄 있고 당차던 아버지의 옛 모습이 그리워 운다.
‘아, 아부지!’


장년이 된 아들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전화를 건다.
‘가족회의를 소집해야겠다.’
초등학교 교장이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에∼또’로 시작되는 훈계가 많았다.
한참동안 훈시를 하시고는 ‘마지막으로’하고 톤을 높인다.
자식들은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끝으로’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서야 연설은 끝난다.
오랜만에 그 교탁위의 연설을 듣게 되다니......


의제가 뭐냐고 묻자 나누어 줄 것이 있어 그렇단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들에게 힘겹게 운을 뗀다.
‘어려서부터 너희들 못 입히고 못 먹인 게 한이 되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뭔가 남기고 싶어서.....’ 몇 마디를 못하시고는 격한 감정에 우신다.
‘에∼또’를 생각하던 아들은 당황한다.
얼른 전화를 바꿔든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이해해라. 니 아부지 마음이 지금 그렇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두 번째다.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은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셨다.
울음소리는 학교 교정이 떠나갈 정도로 컸다.
철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줄 생각은커녕 겁부터 집어 먹었었다.
몇날 며칠이 지나 집에를 돌아오신 아버지는 한없이 기운이 빠진 힘없는 아버지였다.
처음으로 아버지보다 무서운 것이 죽음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 일이 없다.
그런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
아들도 따라 운다. 고함소리에 겁먹어 흘리던 눈물이 아니다.
약해진 아버지 때문에 우는 눈물도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를 울고 싶었다.


며칠 뒤, 아들은 노란 서류봉투를 받아든다.
증여세 신고서와 함께 아들에게 3천만 원, 손자에게 2천만 원을 통장에 입금한다는 서류였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56년 동안 모은 돈이었다.
적금을 들었다. 계도 했단다. 사채로 빌려줬다 왕창 떼이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건넨 것은 돈이 아니라 처절한 삶의 투쟁사였고 인간승리의 초상화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이력서(履歷書)를 받아든 아들은 이번에는 울지 않는다.
대신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 아부지. 사랑합니다.’
오늘따라 하늘이 높고 푸르다. 소리치고 싶다. ‘나도 아버지다.’


오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4:15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바울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 교사 및 몽학선생(개인교사)은 얼마라도 있을지 모른다.
애정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는 자들은 많지 못하다.’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2006년 1월 2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톨먼스빌 광산이 무너졌습니다.
13명의 광부가 지하 78m의 갱 속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으로 위독했습니다.
그때 한 광부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메고 있는 산소통 안의 산소는 곧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몇 시간 후에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산소를 한 사람에게 몰아줍시다.”
그들은 자신의 산소통을 어린아이가 둘 있는 스물일곱살 젊은 광부 랜달 맥로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자네는 아직 젊네. 자네가 우리의 몫까지 살아주게나.”


12명의 광부는 매몰된 지 이틀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맥로이만 살아났습니다. 그 때 죽은 광부 중 한 사람인 마틴의 메모지도 발견되었습니다.

“아빠는 힘들지 않아. 나의 가족들아, 사랑한다. 하나님 곁에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국민일보/겨자씨 중에서>


적용하셔야죠.
1. 나는 ‘아버지’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나는 진정, 나의 아버지를 극복했나요?
2.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든 그 분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비판과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이 자식들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입장에 서 본 일이 있나요?
3. 내가 아버지에 편지를 쓴다면 어떤 말을 쓰고 싶어 합니까? 지금,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그 태도로 내 자녀들

이 나를 대한다고 한다면 나는 무슨 생각이 드나요?

 


-송길원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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