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첵자료/오늘말씀묵상

은혜 받은 사람의 특성

미리내꿈 2010. 8. 3. 23:34

2010년 8월 3일 (화) 사랑의 교회 오정현 담임목사님

 

은혜 받은 사람의 특성


고린도후서 4:7~11    2 Corinthians 4:7~11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7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9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0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말씀묵상


기독교 변증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필립 얀시는 은혜를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대 마지막

최고의 단어이다.’ 우리 시대 수천수만의 말들이 내뱉어 지거나 활자화되고 있지만 유독 은혜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의 최고의 단어로 부상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은혜만이 우리를 제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

는 열쇠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4장 7-11절에는 은혜 받은 사람들의 특성들을 몇 가지 이야기 합니다. 4장 1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러함으로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다시 한 번 낙심하지 아

니하고, 긍휼하심을 입었습니다. 이 긍휼이라는 말과 은혜라는 말은 잇닿아 있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가는

단어입니다. 긍휼과 은혜를 입으면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 9절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준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보겠습니다. 8절, 우리가 사방

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온갖 공격과 비방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하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

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지금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특성은, 15장 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바울은 이 은혜 의식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 축복을 주셨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은 놀라운 축복은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은 본래 자신이 질그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가말리엘 문하요, 그 당시에 요즘으로 말하면

최고의 학부에 최고의 성적에 최고의 수재에 석학이었습니다. 도저히 자기는 질그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

다. 질그릇은 깨어지는 존재이고 나약한 존재이고 남이 차 버리고 우습게 아는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겨지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나니 자기가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질그릇이되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라는 것입니다.

우린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의 어전에서 왕의 식탁에 참여합니다. 그 식탁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여러 가지 아름

다운 음식물들이 있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 받은 귀한 음식들입니다. 믿음으

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들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썩지

아니할 기업을 잇게 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명과 특권을 그 은혜의 만찬에서 받을 수가 있습니

다. 그런 은혜를 받으면 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용솟음침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사역과 생명의 역사

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영적인 통찰력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명의

능력을 선포하고 전파하는 자리까지 나아간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확증하셔야 합니다.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능력에 대해서 내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

는 모든 삶의 판단기준, 나의 최고의 관심이 어디로 집중이 되느냐, 과연 여기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느냐,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에 온통 관심이 집중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특성은 내가 질

그릇임을 알고 낙심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이 예수의 생명의 역사가

내 삶 속에서 어떻게 확정되고 잘 될 수 있는가 여기에 최고의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눈이 열리면 생명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전파하겠다는 도덕적 결단과

혁명적 마음의 자세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의 생명의 능력이 선포되는 것을 소원

하면서 마음의 소원을 갖습니다. 내가 생명의 능력과 은혜를 스스로 취하고 창고처럼 간증만 하기를 원치 않고,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능력을 가슴 속에 담아놓기만을 원하지 아니하고 깨닫게 되면 바로 생명의 역

사를 전달해 주는 소위 생명의 역사를 유통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전

달하는 수도관이지 유통을 하는 것이지 저장창고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전선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전

류와 같습니다. 전류가 우리 몸을 통과하여 세상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유통의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이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유통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님의 주일설교(2004.10.10)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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