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 John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형체를 떠나서는 무엇이나 그 실체의 의미를 포착할 수 없는 약점을 지닌 인간은 매우 오래 전부터 신의 형상에 대한 병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발전하여 나중에는 결정론적인 신관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대단한 실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형상이 없다고 이사야 선지자와 모세의 입을 통해서 명확히 밝히셨기 때문입니다.(참고/ 사 40:18, 신 4:12)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마음에 그린다든지 만들어 보려고 하는 생각은 그 자체만 해도 하나님을 정면으로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실체와 인간의 환상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으며 동시에 이것은 인간 최대의 난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극소화 시켜 주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그의 직접적인 음성이나 천사들 혹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록 그의 말씀을 가지고 인간과의 관계를 지속해 오셨지만 역시 인간 편에서는 마음속 깊은 데서 솟아나는 욕구 즉,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예배 드렸다가 저녁에는 형상을 가진 우상에게 굴복하면서 둘 사이를 헤매는 갈등의 역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딜레마가 심각해지자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취하실 길은 하나님이 인간 편으로 내려오시는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편으로 올라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떳떳하게 맞대면 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이것이 단순한 인간 호기심의 충족만을 위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필연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살 길인데 인간이 말씀으로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으로서는 눈에 보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 오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자신의 대전제를 스스로 깨뜨릴 수 없는 하나님은 깨끗하게 단 한 번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할 합당한 제물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시자 몸소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으로 찾아 오시겠다고 예언하셨고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을 몇 백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성탄의 기적입니다.
14절을 잘 음미해 보십시오. 참으로 감격스러운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영광"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의 구름도 아니요, 화염도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하나님을 똑똑하게 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눈으로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시기 위해 하나님은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육신이 되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입니다. 원문에는 "장막을 친다" "텐트를 친다"라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아예 천막을 치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동거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이 "텐트"라는 단어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의 상징물이 아니라 나와 꼭 같은 육체의 모습으로 온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을 말하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됨을 의미하는 데까지 발전합니다.
그 다음에, "은혜"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글자대로 풀이하면, 아름답고 값없이 얻는 선물인데 여기에서의 더 깊은 의미로는 나와 꼭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을 보는 그 자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희생이요 자기비하이므로 낮은 처지에 있는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기적이요 기쁨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 다 버리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님의 주일설교(1985.12.22)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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