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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의 집념을 불태우는 신앙생활

미리내꿈 2011. 11. 4. 09:22

 

 

  고린도전서 9:24~27    1 Corinthians 9: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4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a man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man beating the air.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건전한 스포츠는 우리에게 매우 큰 즐거움을 안겨다 주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진

리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특별히 육상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힘들게 훈련을 하고 경기에 임하지만 상을 얻는 자는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지켜보면서, 또 우승한 자가 누리는 화려한 명예와 영광을 보면서 장차 신실한 하나님

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상은 얼마나 찬란할까 하고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경기는 바울

에게 영적인 값진 진리를 깨우쳐 주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달리는 자에게 약속된 상급
본문 말씀을 정리해보면 24~25절까지는 달리는 자에게 약속된 상과 그 상을 얻기 위해서는 절제생활을 해야 한

다는 내용이고, 27~28절까지는 바울 자신의 생활에 적용한 내용입니다.
본문 가운데서 우리가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바울이 말한 '상' 혹은 '면류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

는 것입니다.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구원받은 자 가운데서 몇 사람이 받을 별개의 보상을 가리키는

것인가? 후자의 견해가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 특별히 잘한 자들에게 상을 주시

겠다는 약속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만도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스무 번 정도 기록되어 있습

니다. 그러면 이 상이 무엇입니까?


성경말씀 중에는 우리가 대답을 할 수 없는 난제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급의

내용입니다. 받아보기 전에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무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계 2:17).

그러나 상의 정체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나를 위한 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때마다 이상한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치르는 올림픽 경기에서는 매 경기마다 메달을 따는

선수가 불과 세 명에 지나지 않지만 신앙생활의 승자에는 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

에 우리가 일치할 수 있도록 살기만하면 수에 제한없이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거기에는 경쟁을 할 필

요도 없으며 누구든지 최선을 다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성경에서 이렇게 약속을 하고 있는데도 이 상급에 대해서 관심이 거의없는 신자들이 교회

안에 참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약삭빠른 계산에 의하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니 그저

그 믿음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앙생활 하면 되지 상까지 받으려고 악을 쓸 필요가 뭐 있느냐 천국에 들어가

는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겠느냐 만약에 천국에 가서 상을 받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덜 행복

하다면 그곳이 어떻게 천국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굉장히 단수 높은 논리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

는 천국에만 들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천국에 들어가면 주님으로부터 황송한 칭찬과 함께 상을 얻는

성도와 그렇지 못한 성도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의 격차가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를 위해 평생 모든 것을 내버리고 충성하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를

살인강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몇 시간 전에 간신히 구원을 얻은 사람과 똑같이 대우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

습니까? 이렇게 볼 때에 주님께서 천국에 상급을 준비해두신 의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상급을 준비해두신 목적
그 목적 하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악용하여 신앙생활은 소극적으로 하면서 세상적인 생활에

는 적극성을 띄고 한 생을 다 보낸 자들이 겨자씨보다 더 작은 믿음 하나 얻어가지고 겨우 천국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자신이 어리석었는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상을 받고 천군천사의 환호를 받는 천국의

메달리스트들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구원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 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구원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기 위해 자기의 생을 바쳐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 자이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상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상에 대해서 무

관심한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상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히 11:6). 그만

큼 상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신앙패턴과 신앙의 성격과 신앙의 열도를 완전히 구별하는 하나의 표준이 되는 것

입니다.


상급을 받기 위한 이 땅 위에서의 삶
이 상을 받겠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에 절제(자기부인, 자

기훈련)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절제입니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선택하는 것입

니다. 먼저 할 일과 뒤에 할 일을 분명히 가려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균형을 바로 유지하

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상급을 얻으려면 고된 훈련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앙

생활을 날마다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생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이기기를 다투는 성도에게는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는 절제요, 자기를 부인하는 절제요, 좁은 길로 외로이 걸어가는 길이요. 무엇이나 예수를 위해서라

면 희생하는 생활입니다. 이와 같은 절제가 있을 때 우리는 마지막에 주님 앞에 가서 준비된 상급을 받을 수 있

습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님의 주일설교(1988.9.25)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